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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대학교 3학년 때 지금의 아내 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몇 달이 지난 후 고향 역동에 가서 아버님 어머님께 “애인이 생겼다”는 보고와 함께 애인 미스 정에 대해서  아는대로 말씀드렸습니다. 미스 정의 아버지는 미스 정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월북을 했고 그 뒤로는 미스 정의 어머니 혼자서 시부모 내외분을 모시고 집안살림을 꾸려가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어머님께서는 웃으시면서 “열일곱 살밖에 안 되는년이 하라는  공부는 않고 바람이 들었으니 저 일을 어찌하나(말이 되는 것 같아서 가만 있었습니다)”  하는 탄식만 하셨습니다. 묵묵히 듣고 계시던 아버님은 “처자식 두고 이북으로 내걸은 것은 필경 그 집에 무슨 문제가 있을 것이다. 잘 살펴봐라”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두 분 모두 애인이 생겼다는 말에 기분이 나빠하지는 않으신 것 같습니다.

 그해 초겨울이었던가. 하루는 아무 예고없이 미스 정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처자식 두고 이북으로 넘어간 사람의 집이 이상한 것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집에 비해서는 약간의 고요가 감도는 것 말고는 아무런 차이도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내 장모가 될 어른을 뵈니 나이가 무척 어려 보였습니다. 하기야 당시 장모님 나이가 서른일곱 청춘이었으니 내 누나라면 몰라도 장모라는 생각은 100리 200리 밖이었습니다.

 1966년 9월12일 내가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던 날, 김포공항으로 가려고 12명은 너끈히 탈 수 있는 합승을 한 대 빌렸습니다. 그때는 지금과 달라 다른 나라에 간다는 것이 오늘날처럼 자유롭지 못한 시절, 적어도 3년 내지 6년은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할, 그야말로 기약없는 이별이었으니 가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이나 무척 큰 별리(別離)의 슬픔에 젖어 있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꿈속에서나 바라던 유학길을 떠나는 흥분 때문에 이별의 슬픔이고 뭐고 느낄 경황도 없었습니다.

 장모님은 합승의 바로 내 앞자리에 앉았고 나는 바로 뒤에 앉았습니다. 김포공항으로 떠나오는데 내 옆자리에 앉았던 둘째누나가 내 귀에다 대고 “동렬아, 네 장모한테 ‘장모님요’ 하고 한번 불러드려라” 하고 여러 번 속삭였습니다. 내 둘째 누님은 한동대학 김영길 총장의 외숙모 되십니다. 남편이 월북하는 바람에 혼자 살고 계시니 입장이 비슷한 장모님에게 초록은 동색이라 일종의 연민의 정을 많이 느끼시는 모양이었습니다. 나는 무슨 구실을 잡아 장모님을 불렀는지는 모르지만 에라 모르겠다 “장모님요” 하는 네마디를 경상도 사나이답게 크게 입 밖으로 내뱉었습니다. 그 순간 장모님은 귓불이 빨개지면서 뛸듯이 좋아하시는 모습이 뒤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월북하고 빨갱이 가족으로 몰려 사회적 배척과 시달림을 받으며 오로지 외동딸 하나만 들여다 보면서 살아가는데 이 딸년이 대학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바람이 났으니 얼마나 실망, 걱정을 했겠습니까. 다행히 딸의 애인이 전액 장학금으로 유학을 간다니 걱정은 조금 줄었겠지요. 먼 길 떠나는 날 경상도 촌놈 사위가 “장모님요” 하고 기운차게 불렀으니 그 감격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지 않겠습니까?

 캐나다에서 우리 부부는  장모님을 모시고 25년 한솥밥을 먹었습니다. 우리가 런던 온타리오에 살 때, 장모님은 영어학교에 다니셨습니다. 그런데 영어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하시는지 우리 부부도 놀랐습니다. 장모님은 은근히 자기 머리가 좋다는 사실을  자랑하실 기회로 생각하셨던지 “내가 대학졸업생 보다 못할게 뭐 있노?” 하시며 공부를 밤 1~2시까지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어떤 날은 내가 문을 빠끔히 열고 들여다보며 “장모님 아직도 안 주무시네요. 공부 너무 하지 마시고 밤이 늦었으니 그만 주무세요” 하면 장모님은 이 사위의 말에 무척 흐뭇해 하시는 표정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장모님, 이제 그만 주무세요” 하는 말은 장모님을 위한 말이라기 보다는 나를 위한 이기적인 심보가 숨어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너무 늦게 주무시면 이 사위 아침이 늦어질 수 있다는 것이 말 뒤의 말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을 모르는 장모님께서는 ‘내 사위가 내 걱정을 가장 많이 해주는 효자 사위’로 생각하고 속으로 흐뭇해 하셨던 것입니다.

 세월은 흘러 장모님은 돌아가시고 우리가 살던 도시 런던 온타리오의 어느 공동묘지에 유택(幽宅)을 마련해 드렸습니다. 이 사위도 올해로 여든 살이 됩니다. 장모님이 지금까지 살아 계셨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나무가 가만히 서고자 해도 바람이 가만히 두지를 않고, 자식이 부모에 효도하려 해도 세월이 기다려주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는 옛말은 만고의 진리라고 생각됩니다.

 오는 9월21일 장모님이 돌아가신지 21년째 기일입니다. 아내와 함께 런던 온타리오 우드랜드(Woodland) 공동묘지에 쓸쓸히 누워계신 장모님 산소에 다녀올 계획입니다. (201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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