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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인 칼럼

leehyun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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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이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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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5
새해 아침에 멋진 방정식

 
 
 하늘에 영광도 이 땅에 평화도 쏟아지는 함박눈과 함께 저토록 풍성하게 인간세상을 간섭하고 지배하며 천체만상을 다스린다는 믿음으로 새해를 맞이 하련다.


소망의 끝이 어디였든 간에 미지의 희망 속에 맡겨버렸던 지난해의 높고 낮은 세상사, 미쳐 이루지 못한 아쉽고 애태웠던 사연들, 녹아버린 눈덩이와 함께 흔적을 지워내면서 흘려 버리련다.


분명코 정월 초하루 새벽은 여느 때와 한치의 다름없이 금년 또 한 해의 하늘 문을 활짝 열어주리라. 


안개 속처럼 더듬거려야 할 시간의 흐름은 또 다른 온갖 세상만사를 형형색색으로 펼쳐내겠기에 의식적 생명체의 두근거린 심장의 흐름 속에 새 날을 맞이하리라.


나를 에워싸고 있는 일가친척, 친구, 이웃들. 보고 싶어 만나고 싶어 베풀고 나누고 싶다고 손가락 끝으로 편지를 대신해버린 인터넷의 유용함이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세상을 풍요롭게 살고 있다. 


주어도 또 퍼준들 사랑의 끝이 보이던가! 나누고 베풀었다고 시늉을 했다지만 그런데도 빈자리가 아쉬움 속에 꽈리를 틀고 자리잡고 있지 않던가. 늘 인색하게만 느끼고 사는 모습이 미완성의 인간적 표적인 것 같으니 말이다.


 피자 한쪽이나 McDonald's Big mac 하나 값이 호주머니를 털며 뒤집게 하던가.


여유로움이 소홀함과 게으름 속에 빠져버린 습성만큼은 가는 해에 깨끗이 씻어 내버려야겠다.


훈훈하고 멋진 새해 아침을 맞이하길 축원 드리는 글 한편을 퍼 올려 희망을 노래하는 경자년 새해 아침의 열리는 기쁨을 함께하고 싶다.


물론 SNS에 떠오른 이야기지만, 읽어도 또 읽어도 훈훈하고 멋진 인간 방정식이라 감히 생각되어 새해 첫 페이지를 장식 하련다. 새해 경쾌하고 활기차게 떠오른 붉은 태양과 함께 벅찬 희망을 가슴에 품어 안으련다.


어느 날 멀리 떨어져 살던 아들을 보기 위해 어머니가 오셨다. 오랜만에 함께한 정겨운 모자지간의 밤새 이어지는 따뜻한 이야기들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바쁨에 허덕이는 세상사 엄마나 아들이나 잠깐 만남으로 쏟아지는 정겨움에 얘기들의 끝을 모르고 끈끈한 모자간의 대화가 이어졌다.


다시 또 헤어진다는 아쉬움 속에 듬직한 아들의 학구열에 취하여 서로를 위로와 격려로 따뜻한 아랫목 같은 사연들이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드디어 눈시울을 적시며 떠나는 엄마의 핸드백에 20만원의 용돈을 넣어준 넉넉지 않는 아들의 효성.


그 돈을 확인하며 기뻐하는 엄마의 표정을 상상하며 사랑해요, 어머니!


뿌듯한 아들의 갸륵한 마음으로 허전한 배웅을 하고 돌아섰다. 방안에 들어와 책상 위 책갈피에 꽂힌 봉투 하나를 발견하고 아니 이게 뭐야? 깜짝 놀랐다. 20만원의 돈과 함께, “아들아! 방값에 보태거라" 엄마의 사랑의 손길이 아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독일의 "케스트너"라는 작가가 쓴 소설 속의 한 대목이다. 경제학적으로 이해한다면 아들과 어머니 모두 이득도 소득도 없는 정만을 듬뿍 퍼나눈 셈이다.


그러나 작품의 방향성은 경제와 윤리 방정식의 차이를 부각시키고 있다.


아들도 어머니도 서로 40만원의 이득을 챙긴 것이다. 80만원이란 무슨 대가를 계산함도 없이 베풀어진 모자간의 따끈한 정 만을 안겨준 것에 대한 경제 방정식이란 순수하고 절절한 이득이 가뜩 안겨졌다는 것이다.


모자간의 포근하고 애틋한 정서적 표현이 고작 20만원이란 액수로야 어디 전부일까 만, 평생을 기억할 수 있는 오붓하고 눈물겨운 피붙이들의 베풂 속에 또한 현명하고 절절한 사랑 속에 칭찬도, 격려도, 베풂도, 나눔도 지혜로운 감정조절의 진면목이란 순수한 진리를 확인케 해준다. 


물론 SNS에 떠도는 아름답게 살아가는 인간적 순수함에 감동과 애절함이 훈훈하게 묻어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젊음을 학업에 열중하고 있는 아들을 방문한 어머니와 아들의 애틋한 관계가 윤리도덕의 방정식에 사랑이 바닷물처럼 넘치고 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leehyungin
이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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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9
세월에 값이 있던가

 
 
값은 무슨 뚱딴지 같은! 성실과 근면으로 나의 최선의 건실함을 실천하며 그래도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남들 보기에 너그러운 인품의 소유자로 보낸 세월이었다면 값진 삶이 아닌가?


묵은 해를 여위며 왜 떠나냐고 소리칠 수도 악을 쓸 수도 없는 한 해를 영원히 보내야 하는 섣달이다. 내가 잘 가라고 손을 흔드는 게 아니고 나와 함께 하자고 온갖 풍상을 겪게 되었던 열두 달의 2019년이 나를 위하여 다듬어 간섭하고 다스리며 지켜주고 안아 주었기에 이젠 새로운 꿈과 소망을 엮어내려 예비된 흠결 하나 없는 새로운 한 해를 위하여 엄동설한 12월 끝자락이 부산하게 서둘러 대고 있다.


이 한 해의 마지막을 붙들고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갖은 용트림을 아무리 한들 떠나버릴 세월인데 누가 무슨 수로 붙잡을 수 있으랴. 낡고 험한 커튼을 걷어내고 화려하고 멋들어진 새것으로 단장해 주려는 것처럼 분명코 새해를 펼쳐주려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2020년 싱그러움과 새 희망으로 내 곁에 다가오는 것임을 부정할 자 없다.
가는 해에 넌 뭘 했느냐고 한마디 묻지도 않았다. 자연이란 내 품 안에 내 너를 감싸 안고 허락하고 다듬어준 너의 삶을 지켜 보호해 주었지 않았던가! 어떤 값 이나 감사의 보답마저도 언제 내가 물었던가?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듣고 네 멋대로 한다고 언제 간섭 한번이라도 했었던가?


해가 뜨고 지고, 비 바람이나 천둥 번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온갖 변화를 네게 허락했다고 값을 물었던가? 투정이나 불만에 벌을 주는 엄포를 내렸었던가? 나의 빛 속에 너를 향한 그 모든 사연들이 오직 사랑 하나였거늘, 넌 그 사랑마저도 올바르게 간직하지 못하고 뭐 한가지라도 의롭게 실천하지 못했던 지난해가 아니었던가? 


그 마저 묻지도 질책하지도 않은 채로, 오직 사계절의 화려하고 정교한 자연의 섭리만으로 내 곁에 함께하련다고 동행하면서 새해를 펼쳐 주었기에, 가는 해에 아쉽고 못다 이룬 네 소망과 희망들 썩혀 버릴 것들 아니지 않던가!


이제 또 다른 새해 분명코 기뻐하며 새로운 도전과 꿈을 성취하리라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허술했고 미비해서 아쉽게 이루지 못한 부끄러웠던 사연들, 헤아릴 수 없는 먼지처럼 많지 않았던가.


계획했고 실천하려던 것들 못 이루었다고 묵혀 둬야 또 다른 야속함과 후회만이 애통함을 지녀야 할 것이기에 새해 음성 귀에 담아 힘차고 강인한 열정으로 내 곁을 추슬러보는 한 해를 맞이하자고 이렇게 뜻깊은 한 해를 펼쳐 안겨주는 것이다. 


"그물이 삼천 코면 걸릴 날이 있다"는 옛말에 희망이라도 걸어본다. 아침에 다짐했던 것이 저녁에 변해버린다는 "조석변"의 허상이 결코 아니다.


약속과 이행, 결단과 용기, 실천과 성취, 이 모든 것들 정서적 요행 역시 아니다.


지성을 갖춘 양심적 행위만으로 이루어 낼 수 있는 투쟁의 산물이요, 용단으로 다짐했던 순수한 가치가 아닌가!


세월의 흐름에 푸념이나 허상으로 흘러가버린 물길마냥 목적을 상실해버린 삶이라고 내 나이만 헤아려 본다면 결국 추억이라는 잔주름에 좌절만이 참으로 쓸쓸하고 애석하지 않겠는가.


 허전하고 외롭지 말라고 부모 형제 자매들 사랑으로 한 몸 되게 했는데, 가는 길들 험하다고 함께할 수 있는 이웃들 친구들 각별한 인연 속에 함께 할 수 있었는데, 산천초목 사계절의 다양한 섭리 속에 온갖 먹고 마실 수 있는 것들 구비되어 사는데 유용하고 요긴하게 넉넉하게 베풀어졌거늘, 과연 몇 가지나 꼭 성취하여 보람되게 살아야 할 네 분량을 채워나갈 수 있었는가?


가는 세월 탓하며 새로 빚어내는 황금 같은 새로운 한해 모든 행위들 과연 이제는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일 수 있으려나? 값도 없이 허락된 또 새로운 한해 정말 기쁨과 감사 만으로 채워낼 수 있으려나?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leehyungin
이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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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2
많은 기쁜 일들이 이 한 해를

 
 
 국제영화제를 놀라게 했던 ‘기생충’이란 화려한 영화계의 별, 봉준호 감독을 위시한 송강호와 출연진들의 환호성이 200여 나라의 극장들을 미어지게 만들어가는 신화적인 한해였다.


지하실에 기생충처럼 붙어 살아가는 천박한 삶의 이야기가 세상의 눈을 뜨게 한 설화같은 줄거리가 감동과 함께 필름영상의 기교를 만인에게 보여준 것이다.


저 지난주 다시 또 이 한해 세계여자 골프계를 평정한 김세영의 마무리 18홀 8.2미터의 돌아가는 커브로 빨려드는 골프공이 이변을 연출했다. 종합 우승기록 10승을 기록한 놀라운 경기였다.


무려 150만불이 쏟아지는 상금이 걸렸던 연말투어를 전설같은 한국 여인들의 투지와 열정이 일구어낸 대박이었다. 


한국영화계의 자존심 신영균 씨의 90세를 넘는 인생사를 대성공이라는 역사로 장식한 이야기. 치과의사라는 고속도로를 질주할 것 같았던 직업을 접고 개화기 한국영화계에 뛰어들어 수백 편의 영화를 평정했던 은막의 아이돌, 그가 500 억이란 남은 자산을 그늘진 불우이웃돕기에 적선한다는 뜨거운 이야기는 사람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화려하게 펼쳐 보인다.


그의 자녀들마저도 아빠의 확실한 결단 앞에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니 그 아비에 그 자식들임을 어찌 감출 수 있으랴. 


무명생활들로 천상의 목소리들 땅속에 진주처럼 파묻혔기에 세상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송가인이라는 가수와, 21살로 가수 현인과 남인수의 환생이란 실체를 그대로 재현시킨 강원도 원주 태생 조명섭이란 사나이다.


그들이 닥쳤던 문을 열고 나와 가요계의 판을 뒤집어내고 있다. 어렸을 때 부자유한 하반신의 대수술로 9살 때까지 4번의 수술을 이겨내고 15살 때에 이르러 예능프로 스타킹에 출연해 방송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신동으로 조명섭 이란 소년, 그가 외할머니와 함께 얹혀 살며 생활고를 책임져야 했기에 넘치는 끼를 접어야 했던 5년여 기간을 묶혀둬야 했던 천상의 목소리 주인공으로 백 년에 한번 나타날듯한 마력이 신비하게 400여 곡의 옛노래들을 청아하고 묵직하게 소름 돋구는 감동적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트로트가 좋아’ 심사진의 가슴을 흔들어버리기까지 기라성 같은 선배가수들의 심사평까지 무색해버렸다. 오죽해야 설운도 가수의 문닫아 버린 노래교실을 조명섭 신인가수를 위하여 다시 오픈한다는 직석 제의까지, 동굴 속 같았던 21년 세월에 밝은 빛을 밝혀주는 것이다.


그것 뿐이 아니다. 12월17일 군에 입대해야 한다는 그에게 장윤정의 소속 IOK가 스카웃 제의와 함께 군입대 연기와 다시 학교 입학의 온갖 생활을 보장한다고 서둘러 계약을 마무리했다는 훈훈한 연말의 기쁜 소식이다.


수 많은 팬클럽이 벌써 그의 탁월한 품성과 개성미에 말려들고 있다. 옛 가수 현인씨의 ‘신라의 달밤’을 열창하는 신인가수의 독보적인 묵직하고 힘찬 감성과 매력이 넘치는 포즈에 흠뻑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또한 미스 트로트 경연대회로 8년의 무명생활을 접고 당당히 가수 반열에 오른 송가인이란 힐링의 마술사, 4만 명이 넘는 ‘AGAiN’ 팬클럽 들의 환호성과 함께 전국을 찍고 미국 투어까지 야무지게 찍어내고 국민가수 자리를 매료시키고 있다.


미국 곳곳에 동포들이 내년에 단독콘서트를 계약하자고 옷깃을 끌어당기는데도 꽉 짜인 스케줄에 여유가 없다니 거짓말 같다. 그녀의 신드롬, 과연 끝이 어디까지일지.


어눌할 듯싶은 그녀의 품성에서 묻어나온 초자연적 목소리와 창법으로 떡집 딸 김소유와 함께한 듀엣곡 ‘애수의 소야곡’ 듣는 이들이 미친곡이란 표현까지 동영상이 불티처럼 야단이다. 


 그것도 오랜 세월이 아닌 겨우 지난 6개월의 짪은 시간에 들불처럼 휘몰아친 미스 트로트의 광란의 열광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현실이다. 


 미스 트로트 경연대회가 옛 노래들에 불쏘시개를 역할로, 각 방송사들이 숨은 가수들을 발굴해내려고 새롭게 편성된 버전들로 역시 혁명이다.


가을잎처럼 떨어져가는 침체의 늪에서 헤어날 줄 모르는 지난 일년 내내 수렁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수출 경제며, 국민소득의 물가지수 역시 제로라인에서 허덕이는 나라살림에 쪼들린 국민들의 자괴감에 실망하는 모습들, 언제까지 애타는 속만 달랠 것인가?


정치꼼수는 청와대까지 압수당하는 비리의 본질 앞에서 국민수준을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암담하고 실망스러움에, "차라리 잊으리라 맹세했것만" 옛노래 ‘애수의 소야곡’의 감미로운 노랫소리에 흠뻑 취하여 애태움을 달래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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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이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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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0
2019-12-09
겨울 찬가

 


겨울 찬가

 

 


 
어디에 간직했길래 이토록 한꺼번에 쏟아 부을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언제 어떻게 무슨 의미로 계산했기에 퍼부어대는 모양새가 하늘밑에 오물들 몽땅 다 덮어버릴 기세다.

 

억척스럽게 차가움의 축복이라 부어대는 모양새가 
분명 뭔가를 기억했다고
대지의 황홀함을 덧입혀대는 것이 아닐까?

 

환호성을 내리막으로 질러대는 가파른 희열과 낭만의 까무러침, 
날렵하게 미끄럼틀에 인생을 달래봤지
너와 나의 빙판의 랩소디를 음미하면서 말이다.

 

절대로 하나도 아낌없이
겨울이란 내 이름 위에
하늘노래를 하얗게 엮으리라
봄 여름 가을이 시샘한다고
결코 멈출 수 없는 오직 너를 위한 향연을 베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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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이형인
76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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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7
해가 떠오른다

 
 
 오랜만에 신문 첫 페이지에 우리 동포사회에 해가 뜬다는 소식이다. 주먹만한 글씨로 대서특필 된 것을 확인하며 놀라웠다. 아리랑요양원(가칭)의 깃발을 꽂는다는 기사다.
요즘 세상살이가 기쁨과 즐거움보다는 찌푸리며 걱정 근심으로 또한 불안과 염려로 살아가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았기에 우울하기 그지없었다. 매일 펼쳐보는 신문의 기사거리들 읽기가 참으로 난감하고 야속한 사연들로 거의 날마다 채워져 있지 않았던가.


 각별히 의도적인 편집으로 지면을 메우려고 하진 않았겠지 이해하면서도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가 참으로 험난함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런데 (새 요양원 건립작업 본격화) 동포사회에 밝은 해가 떠오른다고 모처럼 하늘을 펼쳐 보이는 것 같다.


"구김유정" 사자성어가 아니다. 기라성 같은 4인의 성씨들(구자선, 김연백, 유동환, 정창헌) 4인의 이름이다. 그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뛰어 들었다.


생업을 제치고 노년을 위하여 우리도 못할게 무엇이냐고 팔뚝까지 걷어 올리며 동아줄을 끌어내린 것이다.


350만불의 불꽃이 밝혀주던 한 해가 가기 전에 또다시 촛불을 밝히려나 보다.


중국인들 850 침상 보다야 겨우 130여 침상이란 초라함에 가슴이 움추러들기도 하지만, 수백만을 웃돈다는 그 이민자들의 삶의 형태야 산지사방에 정착하여 이 나라의 한 모퉁일 점령하다시피 대단한 민족이 아닌가!


참새가 기러기와 날개를 어찌 비교할까만 시작이 반이란 진리를 터득하고 실천한다면야 이루지 못할게 없다고 활개를 치며 첫발걸음을 함께 한다니 대담하고 기발한 착상에 박수를 친다.


몇 년간을 투신하여 종자돈을 마련했던 과정에 설왕설래 소리소문들, 350만불의 행방이 찢기어 반쪽이 되어버린 오늘의 결과가 안타깝기 그지없다지만, 10만 동포사회가 어찌 한 목소리로만 대사를 치를 수 있을까!


몇 개월의 짧은 기간 동안 기부금의 산출내역을 추산해본다면, 이런저런 수단과 방법들 참으로 대견하고 야무진 발상들이 총동원되지 않았다면, 어찌 그 거금의 기부금을 산출해낼 수 있었으랴!


누가 뭐래도 동포사회 언론사들과 종교단체들이다. 반세기 이민사에 남다른 투지와 열정으로 부를 창출한 홍길동 같은 인사들, 아니 동포사회의 블룸버그나, 스티브잡스와도 비슷하게 넉넉한 대열에 끼여든 준재벌들의 활발하고 열띤 참여가 없었다면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이제 겨우 시작이다. 그런데 10만 동포들 가운데 1500여 가족들로 하여금 활력에 불을 뿜어냈던 것이다. 이제라도 불씨가 되어 한번 하자고 덤벼든 억척스런 발길이 힘차게 출발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누군가는 해야 했기에 손바닥을 처가면서 불가능의 실체를 가능성의 성취란 도전에 횃불을 흔들어대는 것이다. 건전하고 의젓하게 걸어온 반세기 동포사회를 보자.


가방 하나 들고 빈손으로 이 나라에 정착한 너와 나의 초창기 이야기들, 정착지에 무지했었지만 우리는 열정을 다해 이 나라에 정착했다. 오직 근면 성실함으로 최선을 다했던 반세기의 꿈을 이루어낸 것이다.


우리가 악을 쓰고 견디어왔던 오늘의 우리 동포사회의 주변을 살펴보자.


미확인된 3백여의 교회들, 중형, 대형교회들 거의 모두의 자산을 창출해낸 자기 교회건물들 마련했다.


요양원의 침상이 먼저일 것 같은데, 영혼구원을 위한 몸된 교회건물이 첫 번째라면 하나님의 각별한 배려였을까?


한인회, 노인회까지도 아쉬움 속에서도 우리들의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 반세기 전에 유대민족 자산의 기본이었던 구멍가게들, 오늘의 ‘실협’이란 단체가 바로 그들의 생활 터전이었다.


골목가게 형태 같은 그런 상태의 가게들 우리 민족끼리 파고들어 3천에 육박했던 곳곳에 운영의 묘를 천번 발휘하여 오늘의 ‘온타리오실업인협회’를 알뜰히 운영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 단체가 자금유통이 활발하게 넘실거려 동포사회에 건실한 단체를 지원하겠다고 공론을 펼쳐 보이고 있다. 몇 천불씩 월급을 받는 신재균 협회장이 아니다. 물론 나이아가라에서 출퇴근하는 경비야 당연히 협회예산에서 보충해 주겠지만. 


어느 누가 형편이 어찌되었든 헌신과 봉사라는 사회단체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당연지사 수고비나 활동비라는 명분에 결코 연연할 자리는 아니라는 문제에서 가슴을 비워야 할 것이다. 생업을 제치고 혼신의 힘을 쏟아내야 하는 그 자리라는 기본적 헌신으로 최선을 다할 때라야 부작용의 틀에서 더욱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감투라고 완장이나 찾는 자리 역시 아니다. 자기 주머니 털어내며 순수한 열정 하나만이 주위를 밝힐 수 있는 등대불이란 말이다. 떳떳하게, 깨끗하게, 아담한 동포사회를 위하여 오직 헌신과 봉사라는 의미만을 창출하는 것이 곧 목적을 향한 힘이다.


‘아리랑 요양원’ 4인의 역사적 효의 안방을 향한 따뜻하고 오붓한 발돋움에 동참하기 위하여 기대를 모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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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이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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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2
여행을 떠나요

주위 친구들의 나들이를 하자고 부추기는 전화다. 여행이란 두 글자가 무료했던 시간들을 설렘으로 달구어준다. 또한 그리워 보고 싶다고 만남을 갖자는 기쁜 소식과도 함께다.

요즈음 만나면 안부들 묻고 맛깔스런 음식들로 끼니를 채우고 나면, 화제거리 대화들 가운데 으뜸이 여행 가자는 성화다. 봄 여름 가을 낭만이 쏟아졌던 계절, 초원과 벗삼았던 골퍼들이야 열대 지방에서 부르는 소리에 벌써 챙기는 골프가방에 시름을 달래려고들 발길 손길들 바쁘다.

플로리다며 멕시코와 쿠바로 아리조나의 줄지어 서있는 선인장들을 바라보며 한겨울을 잊어버릴 곳들을 찾아가려고들 서둘러 댄다.

푸른 초원보다야 광활한 바닷길에 둥둥 떠다니며 삼시세끼 풍성한 먹거리 정도야 보장된 크루즈 여행의 짜릿함과 편안함을 즐기려고 이런저런 인연들 함께하려고들 수소문들로 분주하다.

여행! 분명 달콤하고 매력있는 인간사의 화려한 과정의 한 토막 아닌가. 세상만사 허우적대며 꾸려보려고 애간장을 녹였던 각박함에서 탈출구 중에 선별된 기대의 절정이 아롱지게 펼쳐진다.

답답하고 지루했던 인간사, 털털 털어버리고 세상만사 이런 일도 있었구려!

얼-씨구 조오타, 요즘 샛별처럼 반짝이는 토롯트의 여신 송가인의 추임새처럼

두 손 번쩍 들고 환호성을 칠 수 있는 여유가 가슴속을 뜨겁게 달구어 주는 기쁨인 것이다.

평소에 그토록 가까이 온갖 정을 쏟아내었던 친구요 이웃들, 내가 챙기지 않는다면 열 번을 부른다 해도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살맛 나고 행복하기에 그곳엔 위안도 감사도 흐뭇한 감성으로 나를 포옹한다.

그리움이란 속마음뿐이기에 아무것도 안 보인다. 눈빛으로 표현된 두 마음이 함께한다는 기쁨에 감사가 넘쳐날 뿐이다. 사랑이려니, 행복의 주사위는 오직 마음속에 이뤄내는 미소 가운데 결정체일 것이다.

그래, 여행을 가자. 쉼을 갖자는 기회를 성취할 소중함, 서로를 바라보며 아껴주는 차분하고 정다운 친구이어라, 가까이 함께하자. 순간 왔다가 한 순간에 떠나는 인생길, 즐기며 미소 짓는 모든 것 퍼내어 내 갖은것 모두 다 이것이라고 퍼내어 그대 있어 행복하다고 오늘을 사는 것 바로 산다는 것 아닌가!

 

작년에 함께 했던 여행길의 동반자들, 다시 불러 함께 갈수 있는가? 그들이 함께 할 수 있어 그 여행길에 오솔길을 함께 거닐었던 오붓한 추억으로 아롱졌는가?

그 순간순간들 여정 속에 나누었던 대화들 속에 영혼의 향기로움이 묻어있던가? 어느 날 새벽잠에서 깨어나, 아! 멋스러운 지난해의 여행지가 가슴속에 웅크렸던 그리움을 쏟아내던가?

멀리 보이는 들판에 파란 잔디밭이야 잡초들이나 흠결 하나도 볼 수 없이 파랗게 자연을 수 놓았다. 가까이 가서 보면 흠결들 금세 확인되는 잔디밭의 풍경들, 가까이 보았을 때라야 볼 수 있는 것들, 인간들의 성품들과 잔디밭이 닮아도 꼭 닮았다.

밥상머리에서 털털대는 음식들이며, 먹는 시간을 어겨가며 단체행동의 낙오자들,

티격태격 간밤에 바가지를 긁는 습성 때문에 아침상을 따로 국밥으로 투정거린 부부간의 모습, 뒤처리 하느라 비행시간을 넘겨 난리법석을 해야 했던 기억 속의 여행이었다면, 아무리 누군가 변명을 한다고 하더라도 힘든 일이 있다.

따스한 손길 마주잡고 뺨이라도 비벼대며, 함께해주어서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없으니, 내년엔 함께 할 수 없을 것 아닌가! 함께하는 나들이의 동행자들, 만일 흠집도,투정도 소화하기 힘든 여행길이었다면, 친구라는 단어가 한겨울에 꽁꽁 얼어붙어 버릴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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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이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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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4
한뭉치의 <명심보감>

 
 
재앙과 행복은 들어오는 문이 없고 오직 사람이 스스로 부르니 착한 일과 악한 일의 보답은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다. 사람 마음이 착한 일을 일으키면 착한 보답이 비록 아직 이르지 않았으나 행복의 행운이 따르며, 간혹 마음이 악한 일을 일으키면 악한 보답이 아직 되지 않았으나 흉악한 악운이 따른다.


일찍이 악한 일을 행한 적이 있다 하더라도 뒤에 스스로 고치고 뉘우치면 언제인가 반드시 행운의 경사를 얻을 것이니, 이른바 재앙이 변해서 행복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 글은 초략본 "명심보감"(태상감응편)에 실린 글이다. "명심보감"이라는 책은 중국판본으로 조선조 초기 갑술년 1454년 단종2년 때 감사 민상국으로부터 배포되기 시작하여 사람마다 쉽게 영인됐고 사람마다 배우지 않는 이가 없어서 착한 선량들로부터 교화가 온 천지에 일어나게 되었다.


한편으론 백성들의 풍속이 순박해져 후세에까지 끝없이 이어져 국가정책에 많은 도움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고전을 읽고 다시 생각되는 것들 역시 인간의 뇌는 예나 지금이나 일률적으로 변화가 없다는 것과 상통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 옛날에 속된 표현으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도 감성과 혼을 파고드는 좋은 서적들이 인간사를 경이롭게 다듬어주어 사람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풍족하게 채워내고 있는 것이다.


공자왈 맹자왈 먹을 갈며 서당이라는 흙담으로 지어진 공부방에서 선조들의 학구열과 선구자적 영적 자질을 겸비해 내었던 배달민족의 변천사로 인하여 태곳적 조선족의 역사들 참으로 놀랍지 않는가!


배우며 갈고 닦아 인성마저도 깨끗하고 청결한 물에 씻어내듯 심성을 정결하게 다져가며 현대라는 이 시대를 우리는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역사가 표방해낸 선지자들의 가르침에 눈을 비벼가며 도의적 양심의 수준과 정의로운 사회적 참여라는 실천에 나 라는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심신을 정갈하게 가꾸어 내려고 오늘도 십자가를 향하고, 법주를 손끝으로 돌려 매만지며 백팔배 수양을 걸러내는 것까지도 온갖 종교와 신앙의 행위들과 함께, 오직 단 하나 진실하게 살아가련다는 역사적 배움의 실천을 따르고자 두 손 모아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조국땅의 정치인들은 배움이 무엇인지 정의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곳에서 허덕이고 있는 모습만 드러내고들 있으니, 과연 그들은 논밭 팔아대며 책장을 넘겼던 그 많은 배움의 찌꺼기들, 모두 어찌 하려고들. 


오죽해서야 초선의원으로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줄도 모르고 악을 쓰고 기어들어갔던 의정의 단상에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손사래를 쳤을까! 표창원이라는 국회의원의 눈물어린 절규다.


매주 목요일 차고 앞에 던져진 "명심보감"이 아내의 쇼핑 바구니를 가득히 채워낸다. 한 뭉치의 광고지를 너무 뒤적여 대니, 남편이 가져다 주며 이번 주 "명심보감이 벌써 왔구려."


영혼의 보약을 마련해야 함은, 육신의 건강함이 먼저이기에, 두툼한 한 뭉치의 명심보감을 자상하게도 열심히 마치 독서 삼매경에 빠져들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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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이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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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8
만남이 단독 무대인가

 
 
젊음이 꽃처럼 향기롭게 환상적이었던 시절이야 만나면 많고 많은 이야기들 속에 흠뻑 빠져 들었다. 오붓하고 다정하던 이야기로 사랑이 여물던 시절의 연속 이었기에, 백 번을 만나고 또 만나서 두 번 세 번도 듣고 또 들어도 다시 듣고 싶은 대화의 화제가 무엇이었든, 만남이란 핵심에 더 무게가 있었으니 말이다.


사랑이란 두 글자의 의미에 함몰되어 결혼이라는 평생 동반자를 선택하게 된 의미를 성취하게 된 그 속삭이던 아리따운 대화들의 인연으로 추억이 여물었던 것이다.


벌써 연말이 가까우니 여러 만남들 속에 친구들, 일가친척들과의 반가운 만남의 자리들 빈번하게 이어가는 삶의 순서다. 다정다감하게 정주고 마음 주고 즐기며 기쁨을 노래하고 살아간다.


어쩌다 서로의 안부와 근황이 궁금하여 모처럼만에 한자리 같이 할 수 있는 시간들, 귀하고 의미로운 시간들이라 끔찍이도 각별히 배려하며 쫓기는 시간들 틈을 내어 함께 한 설렘으로 채워질 그 자리 아닌가!


얼마나 반가우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삶에 찌든 일상들 잠시라도 덮어두고 그리웠던 순수함을 눈길로 서로 확인하는 귀하고 신나는 자리였기에…


옛 이야기들 속에서부터 이순간까지 벼라별 대화들 줄줄이 터져나온 물줄기처럼 분위기를 몽땅 적셔낸다. 샛별처럼 반짝이는 눈빛들 끔벅이며 언제 끝날 것인가도 언약이 없었기에, 화제성 대화인지? 유익한 삶의 지혜롭고 해박한 지식인지는 따져볼 필요도 없다.


헤아려 본다면야, 친척, 친구들의 근황들이 궁금한 시점임을 꼭 참고해야 할 만남인 것을, 첫 번째로 챙겨야 할 자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개그맨들의 대본처럼 엉뚱하게 폭소와 함께 함성을 유도하려는 관객들이 모여있는 곳이 아니다.


대화의 기준 역시도 없는 자리다. 그렇다고 케케묵은 이야기들 고장 난 레코드처럼 반복되어, 만날 때마다 했던 이야기들 하고 또 한다면야, 그건 독선이요 몰지각한 입버릇의 반복임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대화의 기본이야 상대편의 이야기를 먼저 듣는 것 아닌가. 말은 적게 하라고 하나의 입뿐이다. 더 많이 듣고 기뻐하라고 두 개의 귀를 갖게 되었다고 하지 않던가, 입 하나로 듣는 이들의 관심을 유도하겠다는 습관성 잔소리에 스스로 빠져 허우적대는 비상식적 모습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토론을 거쳐야 하는 자리 역시 아니다. 가족들의 안부를 서로 묻고 서로의 생활패턴에 유익함과 비전을 제시함과 동시에 흐뭇하고 뿌듯한 핏줄임을 재확인하는 곳이다. 


사랑과 인연이 확인되는 그런 모임의 자리가 되도록 정서의 함양이란 최소한의 예의를 품어내야 할 만남의 것이다. 집안의 어른이라는 독무대 역시 결코 아니다. 유별난 인성의 소유자임을 자각하고 거듭나야 할 스스로의 품성을 통제해야 하는 위치에 있음을 자숙하며 분명 성숙하게 성찰해야 할 것이다. 


나의 입 하나로 요란을 떨고 있을 때, 듣는 이들의 두 귓속으로는 당신의 숨소리까지 알아듣고 저울질하고 있음을 두 눈으로 똑바로 보고 자중해야 할 것이다. 성숙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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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이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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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4
고장난 퍼니스(Furnace)

 

 
동지 섣달 기나긴 겨울 준비에 각별히 관리해야 될 난방시스템에 이상이 생겼다. 


광고지를 뒤져가며 어떤 회사가 적절할까? 수소문도 하지 않고 덜컥 전화기에 매달렸다. 


 두서너 군데 메시지를 남기라는 곳을 제켜 버리고, 전화를 받자마자 상황설명에 귀기울인 전문인의 고객관리성 친절한 대화와 함께 책임감이 묻어나는 직감으로 문제 해결을 의뢰했다.


당장 내일 아침에 달려와 책임 있는 점검을 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넉넉한 성품이 포근한 인상으로 툴박스를 들고 씩씩하게 덤벼드는 모습이 믿음직스러웠다.


온도계가 73도로 올려두었는데도 70도 이상 접근하지 않고 fan과 함께 퍼니스는 작동하는데도 단 일분도 안돼 중단되어버린 상황을 반복하는 시스템의 불안정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곳 저곳 물이 흐르는 과정이 막혀 있음을 확인하고 여러 곳에 연결된 고무 파이프라인을 뚫어내고 다시 이어주었다. 난방기가 작동하며 정상인 것 같은 소리가 경쾌하게 팬을 돌려내고 있었다.


이제는 잘 될거에요. 믿고 기분 좋은 표정으로 감사와 함께 수고비라고 요구한 $200을 챙겨 주었다. 


자신만만하게 고쳤다는 난방기가 정상으로 돌아가는지? 신경이 곤두서 있을 수 밖에… 그런데 왠걸, 퍼니스 문을 열고 보니 여전히 물이 새어 나와 질퍽인다. 고장난 상태가 다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동 엔진은 돌고 돌아가는데 온도계의 히팅은 멈춰있는 상태였다. 200불의 효과는 제로상태로 돌아가버린 것인가! 기계라면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기계치 같은 나의 손길로야 뭘 건드려 볼 수도 없이 다시 불러댈 수밖에… 새벽을 깨우다시피 서둘러 다시 점검을 했다.

 

 

 

 

 


이번에도 제대로 수리가 안되면 전체 퍼니스를 바꿔야 된다는 전문가적 그의 소견까지 큰 돈주머니를 만지작거리게 한다. 


많은 돈이 들어가겠군요. 3, 4천불 정도에 하루종일 새 난방기를 설치해야 한단다.


 200불을 받고 두 번이나 난방기를 손보고 갔지만 하루가 또 지나도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막막했다. 기술자라는 의젓한 Tool box 주인이 고개를 갸우뚱, 심혈을 기울여 최선을 다했던 것 같은데, 결과는 원 상태에 머물고 있잖은가! 새 퍼니스로 바꿔야 하나? 


곁에 있는 아내의 레파토리 바가지 소리까지 함께 속 터진 가슴에 못질을 하는 상황으로 짜증은 고무풍선처럼 부풀어 몰려 들었다. 두서넛 친척들과 한숨 섞인 하소연으로 상황을 나누며 동포사회에 소문난 전문인들이 과연 누구일까?


답답하고 암담한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마침, 척하면 말끔히 처리해준다는 냉난방 전문가를 소개해주었다. 이러쿵 저러쿵 똑같은 사정을 묻고 답하는 과정 속에, 못 고치면 No charge 란다. 엄청난 배려요, 신용이다. 더군다나 일년 보증까지!


두 서너 시간 후 영화계의 유명인 봉준호 감독 같이 잘생긴 인물이 툴박스를 들고 초인종을 울린다. 40분 정도 소요됐을까! 두 군데 고무 패킹과 호스를 교체 하는 작업과 함께 흘러나오는 물방울 구멍을 메워주는 손재주로 확실한 작동을 할 수 있게 마무리했다.


그 손길의 수고비는 모두 $140이었다.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이제껏 멀쩡히 수리된 난방기의 작동은 기분좋게 새것처럼 잘 돌아가고 있다.


기술자들의 수준이 등급으로 따로 존재하는가? 광고지에만 의존했던 믿음이 의심스런 회의감으로 이 겨울나기를 준비해야 했다. 


“사장님! 두번씩이나 수고하셨는데도 고장난 퍼니스를 다른 분이 확실한 상태로 고쳐주셨네요. 두어 군데 물이 새는 곳에 패킹을 교체했고, 파이프라인 청소를 깨끗이 해서 원위치에 부착한 게 전부였습니다. 140불 받아 가셨어요. 사장님 챙기신 200불 중에 100불을 환불해주셨으면 합니다. 최선을 다해주셨던 모습을 흠없이 기억되는 사이가 되셨으면 합니다.”


 메시지를 받자마자 "알겠습니다" 답이 왔다. "온라인을 통하여 환불해드리겠습니다." 


 미숙했던 손길에 대한 양심적인 고백의 결과였다. “사장님, 어느 날엔가


점심이라도 함께 하십시다” 카톡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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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이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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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6
너와 나의 인연 속에서

 
 
평생 인생살이, 참으로 여러 가지의 많은 인연 가운데 삶을 영위하고 산다. 어깨를 부딪쳐도 인연이요, 눈길만 마주쳐도 인연이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고도 신비롭고 대단한 인연으로 엮여진 것, 우리의 인생살이들이다.


전혀 알지 못한 너와 나의 관계의 형성, 태곳적부터 이미 예비된 어떤 조물주의 배려였을까? 지긋이 눈을 감고 두 손 모아 소원하며 갈구했던 기도의 응답일까?


주관하여 간섭하고 다스리며 허락해주시는 어떤 신의 배려일까? 유일신인줄 믿고 성경말씀 앞에 무릎 꿇게 하는 하나님의 각별한 배려일까?


지고지순하다는 부처님의 뜻일까? 알라신이나 모하멧의 역사일까? 아무도 정답을 제제시할 자 없다. 있다면, 믿음이라는 신앙의 바탕 위에 철저하고도 확실함이라 스스로의 고백 속에 각자의 신앙으로 정체성의 향방을 각인시켰을 뿐이다.


아빠 엄마가 만남으로 내가 이 세상을 보고 삶을 터득한 인연, 함께한 핏줄로 태어난 형제들, 학교에서 사회에서 온갖 여러 이웃들 친구들과의 이런저런 인연들, 그러다가 잊혀가고 헤어져야 했던 악연까지도 겪어가며 살아가고 있다.


서로의 잘잘못을 타박할 특별한 이유랄까? 뭐 그리 까다롭게 손가락질 할 일도 아니었건만, 보이지 않게 허락된 인연을 소홀히 해버리는 인간적 습성임을 부인할 사람 누가 있을까?


장작불이 타오르듯 유별나게 열정을 다해 좋아하던 친구들이 있었다. 땅콩 반쪽이라도 함께 나누어 먹을 정도로 애틋하고 정겹게 서로를 챙겨주던 친구도 있었다.


세월의 변화에 적응했던 우리네 삶 속에 인간생활의 여러가지 색깔들, 어찌 변화가 없을까만 단조롭기 그지없는 인간적 품성들의 조직적 뇌의 변화야말로 무엇이 통제를 유도하고 있을까?


어느 날 그 순간에 스스로의 옳고 그름의 판단에, 잘 나가는 그 관계에 찬물을 씌워버린 일들 주위에 많이도 보인다. 시간이 흐르면 그런대로 지난 일들에 여유롭지 못했음을 스스로 가려낼 수도 있으련만, 그마저도 성찰하고 고백하며,


나를 한편으로 내려놓고 배려하며 사랑을 베풀어야, 꼬여가던 상황을 원상태로 복원할 수 있었을 것을, 이마저도 고약하게 얄미운 마귀라는 농간에 끼어든 얄밉게도 저주스런 영역에 속한 것일까?


신념이나 지식의 노하우로 수준에 버금가는 살신성인의 경지, 대체 어디까지가 자아성찰의 과정이며, 확고한 정서적 내면의 깊이라 말할 수 있을까?


미숙해서 성숙하지 못했고, 완벽할 수 없었기에 평생 완성을 향해 근접하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언제나 함량미달이라는 인간적 속성을, 과연 우리는 평생을 끌어안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 걸까?


70이 넘어서야 내가 부족한 인간이란 사실을 알았다고 토로한 김수환 추기경의 고백이야말로 살아도 또 살아도 미완성의 삶에 허우적거려야 함이 정의임을 깨우쳐야 하겠다.


그래도 분명한 사실은 먼저 내려놓아야 할 위치가 바로 나라는 사실을 우리는 날마다 각성하고 살아가야 할 책임이 있다. 그 길만이 나의 소관이요, 나를 위한 성찰의 결과임을 정의할 때, 평안과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잃어버린 친구가 아니다. 인연에 충실치 못한 나의 빈자리를 채워 줄 사람은 이웃도 친구도 아닌 바로 나 스스로의 책임임과 동시에 의무였음을 깨달아야 할 상식이다.


누가 누굴 비난하며 잘못이라고 비아냥거리나 그건 아니다. 비평과 불만의 대상으로 낙인을 찍을 것인가? 보이는 상대의 흠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다, 내면의 깊이가 아직도 비워진 상태로 상대편의 의중을 포용할 그 자리를 먼저 채워야 할 빚진 자의 책무가 먼저일 것이다. 평생을 어느 누구와도 반목하고 살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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