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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 이유식의 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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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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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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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6
이 유식 시인의 인생길 산책 78

<양심과 정의란?>

근래에 읽은 글이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아 양심과 정의란 인류의 생존에 무엇을 의미함일까를 곱씹어 보다가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임마뉴엘 칸트는 근대 계몽주의를 정점에 올려놓았고 독일 관념철학의 기반을 확립한 프로이센의 철학자이다. 그는 또한 인식론을 다룬 중요한 저서를 출간했고, 종교와 법, 역사에 관해서도 중요한 책을 썼다.

1724년 출생, 1804년 사망이며 그에게 영향을 준 철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플라톤 등이었다. 그가 인류에게 남긴 저서 중 제일로 꼽히는 것은 순수이성비판론과 실천이성비판론이 있다.

칸트의 묘비에는 이런 글이 씌어 있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감탄과 경의로 나의 마음 가득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나의 머리 위에 별이 총총히 빛나는 하늘과 다른 하나는 내 마음 속의 도덕적 법칙이다.”

이 말의 뜻은 하늘의 별처럼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양심이 마음 속에 별처럼 빛나는 것과 도덕적 법칙을 강조한 것이다.

그의 무덤의 시비에 쓰여진 이 글은 그의 아버지로부터 얻은 양심과 도덕심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어느날 그의 아버지가 산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났다. 가진 것 모든 것을 강도에게 주고 무사히 풀려나서 가던 길을 계속 걷다가 문득 그의 바지 밑에 숨겨두었던 금덩이가 생각이 났다. 이에 그는 다시 강도를 찾아가 내가 잘못한 것이 있다며 숨겨두었던 금덩이를 강도에게 주었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것 모든 것을 당신께 주었다는 것은 거짓이었다. 당신들이 무서워 당황하고 숨겨둔 금덩이를 주지 못했다며 금덩이를 강도에게 주고 돌아서서 왔던 길을 가려 한다.

이때 강도들이 크게 반성을 하고 그를 불러 강탈했던 모든 물건을 돌려주며 자기들이 크게

 

잘못 했다고 용서를 빌게 된다. 칸트는 이 사실을 그의 아버지로부터 듣고 그의 생존의 철학으로 간직하고 죽음을 맞이하여 그의 묘소에 상기와 같은 시비를 세우게 된다.

이렇듯 정직한 아버지 밑에서 교육을 받은 칸트는 아버지의 양심과 정직한 삶의 태도에 감명을 받아 공부에 전념, 세계적인 철학자가 되었다는 일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양심과 정직한 삶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할까를 생각게 한다. 칸트의 아버지와 같이 생존의 어려운 순간에 정직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의 용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같은 범인의 삶은 금덩어리가 아까와서 다시 강도들을 찾아가 숨겨두었던 금덩어리를 강도에게 줄 수 있었을까 하는 정직성은 삶의 귀감이 되리라.

나는 여기서 칸트의 시비 이야기를 음미하며 인간 이 유식의 사후 시비는 무엇으로 쓸까를 생각하며 낄낄 웃어 본다.

문득 생각은 <유랑의 세월을 참회하며 걸어온 한 무명의 유명시인이 흙의 고향을 찾아왔다. 영혼의 오른쪽에는 무궁화 꽃 왼쪽에는 알버타의 들장미 꽃을 심어주고 그리움에 목이 타서 여기에 묻혔노라. 깔깔 웃자 웃어 민초>

어허라 누가 나의 묘소에 시비를 세워 줄 것인가. 기러기 줄지어 허공을 울며 날아가고 뜬 구름이 손짓을 하는구나. -민초 이 유식 시인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slee
이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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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9
민초 이유식 시

<사람구경>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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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월 코로나 19로 왔구나

머무는 것 잔인함이 생지옥이기에

그리움의 발작은 사람에게서 오나 보다

 

옛날 옛적에

보따리 무역을 할 때의 고난의 추억을 어찌하랴

신용장(L/C)을 열려 하니 돈이 없다

보따리 무역도 할 수 없는 난감한 현실

그 몸서리 처지는 좌절감에 떠 오르던 처자식들의 눈동자

 

그 눈동자가 나를 울릴 때 찾아갔던 곳

생존의 의욕이 활화산으로 타 오르던 곳

남대문 청계천 경동시장

그곳을 찾아가 사람구경을 한 가련한 이방인

두 주먹 불끈 쥐고 삶의 용기를 주던 사람 구경

그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눈물이 흘렀다

 

행복의 기준이 하늘로 올라가고

남보다 잘나도 공수래공수거의 진리

무릎을 탁 치며 후회할 때

태양은 서산으로 떨어졌나니

 

삶이 씨줄과 날줄로 춤을 추는

사람 냄새가 눈물로 승화되는 괴질의 세월

떠오르는 만월의 진리가 사람구경을 하고자 길을 떠난다

 

어허라 어허라 오늘이 간다

코비드 19 보리고개 같이 넘으면 좋으련만

인고의 삶의 고개가 정처 없이 흘러만 간다

<이유식 2021년 3월>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slee
이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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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2
이유식 시인의 인생길 산책 77

<희망의 봄맞이를 하자>

춘래불사춘이라 했던가. 계절적으로 봄을 맞이했건만 이곳 캘거리의 날씨는 봄은 왔다는데 온 것 같지 않다.

봄을 찬미하기 전에 여름으로 접어드는 이곳의 일기가 원망스럽다. 조국이라면 사계절을 피부로 느낄 수 있건만 여름과 겨울만 있는 이곳의 생활은 우리 동포들에게는 조국의 아름다운 계절을 더욱 그립게 한다.

폴란드에서 유래되는 계절의 변화를 우리 인생과 비교를 한 예를 읽으면 아주 감미롭고 그 뜻이 신비스러움을 느께게 한다. 즉 봄은 처녀, 여름은 어머니, 가을은 미망인, 겨울은 계모와 같다는 풍자는 음미를 해볼만하다는 생각이다.

이 말은 봄은 처녀처럼 부풀어 오르는 가슴과 같으며 여름은 어머니 같이 풍성한 녹음으로 만물을 성장케 함이고 가을은 미망인 같이 낙엽 떨어지는 쓸쓸함을 상징하고 겨울은 계모처럼 쌀쌀하고 사나운 겨울 찬 바람과 같다는 것을 뜻한다는 생각을 하면 아주 재미가 있는 말이다.

희망을 안겨주는 봄맞이. 봄은 생성 생명을 잉태하고 또한 겨울의 혹한을 벗어나 기지게를 펴니 인류에게 희망을 주고 나아가 우리의 삶을 환희롭게 한다. 밀레와 고호는 씨 뿌리는 젊은이를 그려서 사람에게 희맘을 안겨주려 하였다.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결실의 꿈을 안겨주었기에 성실히 일을 함으로 정신적인 안위와 사람이 살아갈 길을 제시해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 말은 봄은 생명의 여신 즉 출생의 산고 속에 인류를 번식시키는 여자의 경이로운 힘을 전파하고 있다.

여기에서 봄과 인생을 음미하는 영국의 철학자 <라스렛>의 말을 더듬어 본다. 라스렛은 태어나서 성장을 하는 기간을 제1기의 인생기 즉 봄을 말함이며 성장후 삶의 현장에 임하는 기간을 제2기 인생이라 칭했는데 이는 열심히 일을 하는 시기 즉 여름을 뜻함이며 제3기 인생의 길은 가을로 은퇴를 준비함이니 즉 가을을 상기하였던 것이다.

제4기 인생은 겨울을 상징하는 것으로 흙의 길로 접어 들었음을 의미 하니 4계절을 인간의 삶과 비교한 적절한 해석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방인인 우리의 인생을 4계절과 비교해 보니 멀지 않아 이방의 들녘에 꽃이 피고 로빈새가 추녀밑에 둥지를 트리라는 생각은 우리들의 봄을 아름답게 미화해 준다. 즉 생명의 본질은 암흑이 아니고 광명과 환희를 찬미하는 봄, 그 봄을 맞이하고 있지 않는가?

코비드 19의 고난의 현실 속에서도 동포 제위님들 한분 한분이 희망과 기쁨의 봄을 맞이하시기를 기원들여 보며 결론을 맺는다. <민초 이 유식 시인 2021년 4월>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slee
이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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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1
민초 시단

민초 시단

안개 詩

 

억만개의 별들을 몸 속에 숨기고 자리에 눕는다

사방의 벽에 문신이 박혀 너훌너훌 춤을 추고

미세 먼지가 거미줄로 내 몸을 칭칭 감고 있다

 

써커스를 하는 나의 마음

하늘을 보니 달빛에서 들리는 은빛 파도소리

나의 자화상이 꿈틀 꿈틀 천상에서 손뼉을 친다

 

갈 곳이 없는 내 마음 구천에서 한숨 짓고

창공에 새 떼들이 까맣게 날아올라

지상에는 봄꽃이 피는 지평선 저 넘어

연두빛 나뭇잎 사이사이의

콧노래 부르는 전설의 아지랑이 꿈

생과 사의 종착역의 진실을 찾아가는 하루살이들의 행진

 

허무의 강에 꽃을 피우는

적막은 절망의 씨앗으로 뭉개구름으로 떠돌고

해발 8천피트 산 정상에 봉화불이 탄다

 

길손의 길 저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안개끼리 퍼즐을 맞추며 태양빛에 꿈틀거린다

<詩作의 産室> 나는 상기 작품을 탈고하며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고 고뇌하며 이 작품을 썼다. 즉 삼라만상의 형태의 현실적인 삶을 인간의 잣대에서 가늠해 보고자 했다.

신앙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관도 위선의 범주에서 신을 빙자한 자기 합리화의 우월주의적 사고에서 모든 잘 잘못을 나는 신을 믿으니까 나는 다 옳고 정의로운 삶을 살아간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도 해본다.

나는 환상에 젖은 것은 신앙 즉 내가 이 신을 믿기에 나는 저 세상에 가서 너보다 낙원인 세상에서 살 것이고 또한 죽어도 영원히 죽지 않고 부활(Resurrection)이 되어 영원히 살아간다는 환상에 젖어서 현실은 없고 미래를 무시함은 맹목적으로 신앙의 가치만을 인정코자 함이다.

내가 전생에서 이생으로 태어날 때 신앙이 무엇인지 알고서 태어났을까? 끝없는 의문 부호는 인류가 생을 마칠 때까지 간직한 숙제임을 부인치 못하리라.

즉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무슨 길을 걷든 충만한 삶을 살라>는 가르침은 기실은 거짓과 위선이 아닌 참된 삶을 살라는 것이지 않을까. 인류가 신을 믿는 마음은 인류 자체가 인류의 길을 해결할 수 없는 갈급한 마음에서 시작이 되었음이 자명하다.

그러나 믿는다고 해서 원하는 길이 뜻대로 열리지 않는 두려움은 더욱 깊어가고 주변의 타락된 모든 것에서 자기 위안의 길을 찾으려 함은 본능의 욕구를 충족코자 함에 신앙으로 위장되어 있지 않을까.

여기에서 밥벌이의 수단 정치나 통치를 위한 방법론으로 활용도 되고 있기에 신앙도 안개 속에 쌓여 있다. 안개라는 미세 먼지의 변화에 따라 태양빛의 변화에 따라 안개의 빛도 있다가 없어지기도 함이 현실이며 이에대한 퍼즐에 따라 인류의 생존은 우왕좌왕 그렇게 한생의 꿈을 안고 때가 되면 죽고야 마는 서러움이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올바른 진실의 길을 찾을 수는 없다는 것이 생자필멸이고 거기에 생존의 고뇌가 숨쉬고 있다. (이유식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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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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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8
이 유식 시인의 인생길 산책 74

<무명의 유명시인>

 -이 유식 선생님을 위한 사랑의 시/ 김 성찬

“문득 책갈피에 꽂아둔/ 마른 꽃잎 같은 생각이/ 바람 일적마다 /구겨진 그대 일상들/반듯하게 펴 봅니다/ 외로움이 생성한/낯선 변방 떠돌며/아퍼하는 마음의 상흔/ 다 꿰메주는/스스로 격을 낮춰도/ 그럴수록/부피를 쌓아 /감동의 여운 되어 /내 마음의 바다에/ 물비늘로 흐릅니다

그럴 때 마다/ 그건 베풂이 아니라고/수줍게 웃는 모습은/ 순수하고 온순한/그 마음을/엿 보는 듯 합니다/들어내지 않음으로/더 큰 사랑으로/ 다가서는 것을/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아침을 켜 들고 온 햇살이/현관문 열고/ 와락 쏟아 부은 햇볕이/무릎까지 차 올라/퍼 낼수록 더욱 출렁대는 빛/ 그 티끌 없는 맑은 하늘/ 지붕 아래/언제나 주기만 해서/ 더욱 빛나는 사랑/그대인 줄 누가 알았으리/.”

인생은 인생살이의 값지고 올바른 길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면서 방황하다가 연륜에 퇴색되면 흙의 고향으로 돌아감이 우리네 삶이련가. 흔히들 젊어서는 능력껏 성실히 일한 결과를 잘 축적함으로 노후가 편안하리라는 의견들이다.

이 말은 삶의 과정이 자기의 뜻대로 잘 살아왔는가를 반추해 보는 보편적인 사고일 것이다.

무명의 유명시인이란 타이틀로 글을 써 보고자 하니 할말이 막히나 위의 김 성찬 시인을 대면 한 적이 없는데 나에 대한 사랑이란 시를 썼기에 나는 언제나 무명의 유명시인으로 살고자 함에 황망한 부끄러움이 있다.

행여 이 별 볼일 없는 허접한 무명시인을 유명시인으로 만들려 하나 하는 착각을 하면서 쓰디쓴 웃음을 웃어 본다.

나를 사랑하는 펜이 있음에 감사를 하며 상기 시를 올린 것은 나의 졸저 뿌리(Root) 를 매입해서 읽고 이 책에 대한 자기의 진솔한 마음을 피력한 작품임을 알았다. 어쨌던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가 장황한 서설을 더 붙여<Carol Kitt>의 노래( When I Dream )이란 노래를 영상으로 제작히여 인터넷 카페에 올린 것을 또 다른 독자가 나에게 보내어 주었다.

살다가 보니 이런 재미있는 일이 나에게 주어짐에 황홀함과 동시에 이제 내가 유명시인의 반열에 오르는가를 되새김을 하며 껄껄 웃어본다.

근래의 읽은 책 중 뉴욕 타임즈에 배스터 쌜러 였던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거래의 예술 (The Art of The Deal )이란 자전적. 부동산 부자로 성장 대통령까지 역임한 이분의 삶을 조명해 보았다. 환경과 조건이 다르다해도 이 분이 활발하게 사업을 할 때 나도 이 분과 같은 사업을 했는데 비교를 함은 넌쎈스일 것이다. 사업적인 사고 능력은 하늘과 땅 차이임을 절감하며 흥미롭게 읽었다.

이 같이 부동산 개발업에서 시작 세계를 지배하는 사람 트럼프 대통령 같은 분은 무명에서 유명인이 되었기에 위의 타이틀에 격이 맞다는 생각이다.

인적 사항도 얼굴도 모르는 분이 나를 명시인으로 만들어 줄려함을 사양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썼다. 나 같은 사람은 있는듯 없는듯 그저 한 생을 무명시인으로 살아가다가 흙이 됨이 적격이 아닐까. 도로변의 눈이 녹아내리 듯 내 마음도 정처 없이 녹아 내리는 석양이 되었다.

민초 이 유식 시인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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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1
이유식 시인의 인생길 산책 73

<인연과 친구>

 사람들은 친구들 때문에 건전한 삶을 영위했다는 글을 많이 읽었다. 어쨌든 벗들 때문에 위안과 감사한 마음으로 행복한 세상을 살아 왔다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공감을 한다.

 그러나 공자님이 말했듯이 자기를 대신할 수 있는 벗 3사람을 가졌다면 그 인생은 성공한 삶이라 하는데 이 말을 곱씹으며 과연 나에게 나를 대신할 벗은 몇 사람이나 될까를 생각해 볼 때도 있었다. 이 악다구리 같은 인생사에서 그 인연이란 것의 만남을 중요시 함은 당연한 일이다. 세상을 살다가 보면 환경과 입장에 따라 가변하는 사람도 많이 보았다.

 흔히 인간관계는 10%는 우연히 멋진 인연으로 맺어지는 것이라 생각도 하고 그 우연 보다 90%는 성실한 노력에 의하여 훌륭한 인연을 맺을 수 있다고 한다. 즉 인연이란 노력을 하면 좋은 인연으로 승화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인연도 물거품이 됨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인연의 아름다운 결실을 위하여는 끊임없이 이해하고 양보하고 배려하는 깊은 인간의 정이 필요하리라. 변치 않는 마음의 진실에서 우러나오는 양보, 그 양보 속에 자기 희생을 아름답게 감수하면서도 항시 감사의 정이 티없이 묻어날 때 인연을 가진 벗에 대한 양식을 높히 받아들이려는 인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가 되리라는 생각이다.

 왔다가 가는 인연도 아름답게 간직할 수 있는 미학적인 꿈을 상상함은 고귀하지 않을까. 떠난 인연이라도 명상에 잠긴 순간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얼굴 하나 그 잊을 수 없는 지난날의 환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인연일까.

 우리네 삶은 아무리 건강해도 늙으면 세월을 감당치 못하고 정해진 길 그저 흙이 되고 나면 그 것으로 이생의 삶은 끝이 나는 것이다. 돈이 많고 권력과 명예를 얻었다고 해도 8순에는 효용가치가 사라지고 건강하다 폼을 잡아도 9순이 되면 소식 없이 사라져 가지 않을까 행여 백세 까지 살아간다 한들 내 의지대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살아있는 송장의 신세라면 이를 말해서 죽기 보다 못한 생존이라 할것이다.

 즉 내 의지대로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삶, 걸을 수 있을 때 많은 여행도 하고 능력껏 남에게 베풀 수 있을 때 베풀고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돈 걱정말고 먹고 마시고 자기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인생을 멋지게 살아왔고 행복했던 생존이 아니었을까.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왔다가 떠나간 작지만 많은 것 같은 나를 만났던 여인과 남자, 나의 모든 친구들 하루하루 즐겁고 보람찬 생존을 영위하기를 기원드리며 결론을 맺는다.  

민초 이유식 시인,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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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4
민초 이유식 시인의 인생길 산책 72

<가야만 하는 길>

얼마전 산수의 삶을 반추한 수필을 발표한바 있다. 그 후 나의 마음은 가야만 하는 길을 피할 수 없는 절박감에 몸살을

앓고 있는 것 같다.꼭 가야하는 운명적인 길을 상상함에 있다.. 가던 길을 멈출 수도 없고 멈추고자 간절한 마음으로 염원을드려도 본다. 잡을려 해도 잡을 수 없는 이 길을 우리네 인생은 어떻게 소화를 하며 살아갈까를 생각해 보나 길은 없다.

이 숙명적인 길의 정리는 없슴에 자괴감을 느낌은 나만의 생각은 아니리라. 남 앞에 내 놓을 만한 명함 한장 없이 8순 고개를 넘어섯으니 이 얼마나 한심한 생존의 길이 였던가를 곱씹어 보지만 거듭되는 것은 세월 속에 묻혀버린 회한 뿐이다.

꼭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잡아둘려 애타던 그리웠던 사람들도 나의 욕망을 불태웠던 욕망도 사계절의 막장 깊은 겨 영하 20도에 묻혀있는 나를 본다. 이제 내가 가야할 길은 어디일까 애달펐던 아쉬움도 그리움으로 간직할 수 없는 추억을 세월 속에 묻고 영하 20도의 차가운 바람을 마시며 강가에서 울고 있는 오리 떼들을 벗하며 걸어 본다.

생자 필멸임을 알면서도 왜 생자가 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으니 왜 내가 필멸을 맞이해야 하는지 용납이 되지 않음이 나를 괴롭힌다. 깊고 깊은 북극의 겨울 한 복판에서 멀지 않아 봄은 오리라는 기대 속에 세월은 정처 없이 떠나가고 봄이 왔다 싶을 때 내 청춘이 사랑을 알듯할 때 그 사랑은 소식없이 떠나갔으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뒤 돌아보면 유복자로 태어나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은 내가 받지 못한 아버지의 사랑을 나의 자식들에게는 아버지의 사랑이 어떤가를 흠뻑 안겨주고 싶어 열심이 그 자식들을 위하여 나의 모든 정성과 사랑을 쏟아 부었지만 그것도 지금에 생각을 하면 티끌같은 자식 사랑이 였기에 부끄러움 속에 왜 좀더 남들의 아버지 같이 자식들을 훌륭히 키워네지 못했는가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흘러가는 강물을 막을 수 없듯이 가는 세월도 잡을 수가 없기에 그 세월 속에 마모되어 가는 나의 육신을 각인해 보니 그저 안타까움만 쌓여간다. 생자 필멸의 숙명 앞에 그 세월이란 것이 나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하루하루 잠식시켜 산화시켜 나감을 어찌 막을 수 있을까.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닌가. 가까히 지나는 친구들 나 보다 건강한 듯 속으로 곪아도 걷으로는 모두가 건강한 모습으로 톡도 주고 받으니 고맙고 감사한 일임을 알면서도 무엇인가 불안하고 부족함을 느낌은 내가 과민한 탓일까. 나는 피할 수 없는 숙명적 길을 걷고 있기에 자탄의 자화상의 푸념을 하고 있다.

<죽음으로 가는 길 내가 꼭 가야만 하는 길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민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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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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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5
민초 이유식 시인의 인생길 산책(66)

하이얀 나비의 꿈

하이얀 나비 한 마리가 헤일 수 없는 나비로 변해서 들과 산을 덮었다.

그리움의 저편에 반짝이는 등댓불은 생존에서 피어나는 파도소리로 장대비를 내린다. 가야할 길의 종착은 어디일까.

죽음으로 출렁이는 계곡물 소리 아름답게 흐른다. 그 계곡물이 강이 되었고 강물이 대해를 이루어 놓은 인간들의 삶, 그 곳을 찾아간다.

멀지 않아 깊었던 겨울은 이방의 산야에서 울려퍼지는 산울림의 메아리, 그 메아리 소리에 현실과 미래는 아련한 꿈의 동산을 찾아가는 것이다. 봄을 맞이하려는 일곱 색깔의 나비 떼가 사랑과 그리움을 안고 날아간다.

방향 감각도 없고 구하고 찾고 두들겨도 길은 열리지 않고 찾을 길도 없는 반응, 그 서러움 안고 멀리서 찾아오는 그리움의 뱃고동 소리 포구에서 들려오는 황홀한 환희의 노래에 희망은 춤을 춘다. 가로등 불빛의 탓이다.

역사가 돌고 돌아 작년이 금년이고 어제가 오늘의 여정에서 노란 나비가 흰 나비가 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희망은 변함 없이 찾아오고 살아 있기에 찾아오는 용기일 것이다.

언젠가 왔던 봄 나비 꽃이 피기에 나비가 찾아오고 벌들도 울고있는 그 그리움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 속에 수 많은 별들이 나를 보고 웃고 있다.

나 고백한다. 피었던 봄 꽃망울을 다시 볼 수 없다해도 내 얼굴 시리도록 기다려도 소식이 없는 하이얀 나비 한마리가 쌀가루 같은 눈으로 변해서 대지를 덮는 신비, 그 신비감은 기다림에 지친 세월 속에 응고된다.

흰 나비 떼들이 너훌너훌 춤을 추는 영혼의 눈물, 보이지 않는 바람소리를 벗하며 하이얀 그리움을 향해서 삶의 진실과 결실의 꿈을 안고 나비 한마리 이정표 없는 우주의 저편 들녘을 향해 날아간다.

오! 나의 우주여! 하이얀 쌀가루같은 나의 나비가 우주를 덮고 있을 날은 언제일까?

민초 이 유식 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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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8
민초 이유식 시인의 인생길 산책 65

<팔순(傘壽)의 고지를 점령하고>

 일흔의 고희연(古稀宴) 때 70을 살았다는 기념으로 아이들이 각출한 거금으로 한달간 전 가족이 이태리 여행을 했었다.

 그 때 나의 생각은 내가 70의 고희를 맞이 했으니 앞으로 10년을 더 살 수 있다면 팔순(八旬)의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팔순 고지를 향한 생명력을 상상한 적이 있었다. 과연 내가 팔순까지 살아갈 수 있을까를 생각했는데 10년을 더 살았으니 10년의 나의 삶은 덤으로 살아왔음이 분명하다.

 팔순까지 하고 싶은 일도 하고 여행도 실컷하며 남은 나의 삶 10년을 더 멋지게 살리라는 각오가 부질 없는 욕망이 아님을 알게된 나 자신의 대망이 이루어졌으니 이제 또 다른 덤의 인생의 삶 10년을 더 상상함은 지나친 욕심일까, 부질없는 나의 욕망이 남에게 노추(老醜)를 보이거나 초라한 삶이 될까 두려움도 느낌이 요사이 나의 상념이다.

 잡을 수 없는 세월 따라 90고개를 향한 나는 대머리 총각이 되었고 얼굴에는 주름살이 난무하고 있슴에 서글퍼짐을 어찌하랴. 생각을 하면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니고 내가 찾아간 것도 아닌데 세월이 나를 버리고 흘러 왔음을 어찌할 수 없는 일임을 알면서도 세월이란 것이 나는 간다 나는 간다를 외치며 가버렸지 않는가.

 그래도 나의 마음은 청춘인데 그 청춘의 욕망을 도저히 버릴 수가 없으니 이 얼마나 병적인 생각인가.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정해진 길인데 홀가분히 기분 좋게 가자고 작정을 하나 그 마음이란 것이 그렇지 못하니 그저 부질 없는 망상임을 알았을 때에 사무쳐 오는 허무감을 어떻게 해야 할까.

 긴 머리 화이얀 얼굴 항상 그려보는 그 화사한 웃음 새까만 눈을 지긋이 감았다가 뜨면 맑은 호수 같이 아름다운 그 아가씨의 모습을 그려보는 이 망상이 행여 비겁해지면 얼마나 불쌍한 노추가 될까를 생각하면서도 망상은 아름답게 투영이 된다.

 아집도 가난한 모습도 보이지 않고 당당히 있는 것도 없는 척 없는 것도 있는 척하며 나의 삶을 즐기며 떳떳하게 용감하게 살아가자고 곱씹어 보나 보기 싫지만 잘 생긴 나의 모습도 간곳이 없어지니 이 일을 어찌 해야 하나.

 자신이 자신에게 물어도 보고 답도 하면서 낄낄 웃는다. 더 엉뚱한 생각은 내가 9순을 살고 난 후 또 10년 덤의 인생을 산다면 이 기막힌 일을 어찌하면 될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할 때이다. 아마 이는 나의 가족에게도 큰 재앙이고 나에게도 큰 재앙이 아닐까를 추상해 본다.

 어쨌던 바람같이 불어가는 세월이니 그저 건강히 욕심을 버리고 친지에게 감사하고 친구들께 감사하고 밉던 곱던 인연이 있었던 모든 분들께 감사하면서 힘자라는데 까지 남을 위하여 희생도 하며 마음을 비우고 살아가면서 그저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당신이 최고입니다. 부족한 사람 많이 지도해 주십시오를 노래하며 인생 100세 시대을 그려 본다.

 이는 내가 아닌 다른 모든 분들이 100세 시대를 만끽 하기를 기원 드려 보는 마음이다.

 나아가 남은 나의 삶이 좀더 알차고 성실히 살아가며 인류를 위하여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뜻 있는 일을 하고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멘'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흥얼 거리는 이 허수아비를 어찌 하려나.

 내가 캐나다 나이로 팔순 고개를 점령했으니 100여년 전 이조시대에 조상님들의 평균 수명이 47.3세 였으니 그 때와 비교를 하면 많이도 살았는 것 같다. 80 고지를 점령했으니 상당한 실력자가 아닌가. 코비드라는 역병이 없었다면 가까운 친구들이나 학연의 동문들을 초대해서 개선 장군이라 폼을 잡으며 소주라도 한잔 하련만 그렇지 못하니 아쉽기만 하다. -민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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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lee
이유식
86155
10333
2021-02-11
민초 시단 ---누군가를 사랑함은...

민초 시단

누군가를 사랑함은...

<이유식 시인>

 

누군가를 사랑함은

사랑을 받는 것보다 아름다우리라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알고자 하지 않으면 모른다

 

쌀가루 같은 눈이 휘날리는 창가에서

로키산 계곡에 쌓여가는 눈더미의 두께 같은

나의 사랑을 당신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나의 마음은 주는 것에 행복을 만끽하리라

 

스쳐가는 숱한 사람들

아는 듯 모르는 듯 만났던 인연의 끈

끈끈히 엮여진 가변의 진리라 해도

왜 너에게서만 받는 것보다

주는 것으로 행복을 찾아야 하나

슬퍼하거나 미워하지 않을 사람 하나

그 기막힌 사연은 어디에서 연유를 했을까

 

아비규환의 인생사가 바람에 휘날리고

잠을 잃은 아득한 피안의 넝쿨에서

들장미로 피어나는 아지랑이꽃도

사랑과 인연이 그렇게 가고 있음을

 

주는 것의 행복을 찾는 소떼들의 울음소리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행복했기에

내 마음의 마지막의 절규라 해도

그대를 그리워 했기에 나는 행복했나니

<詩作의 産室>

성경을 제대로 정독을 하면서 읽지도 않았으나 내가 성경에서 즐겨 읽는 구절은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 또한 사도행전 20장 35절이다. 읽고 또 읽어도 읽고싶은 말씀, 인생을 옳바르게 살아가는 최고의 지침 말씀이다.

이 작품은 내 마음 속에 자리잡은 성경의 경구이다. 사랑을 받기 전에 베풀고 주면서 살아 갈 수 있는 사람들이 된다면 인류는 평화스럽게 살아가게 될 것이 아닐까.  <민초 이 유식 21년 2월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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