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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yoo
미국의 캐나다 침략(22)-1812년 전쟁 전후(12)
donyoo

 

(지난 호에 이어)

스캇 준장의 공로로 치프와 전투에서 승리한 브라운 소장의 미군은 온태리오 호수로 연결되는 나이애가라 강변에 차지한 조오지 요새로 후퇴한 라이알의 영군 측면을 포위하였다.

그러나 찬시 미 해군사령관의 병고로 미 해군이 필요한 전투함건축이 계속 지연되어 온태리오주는 영해군이 장악하게 되었고, 조오지 요새를 함포 사격할 수 없어 브라운의 미군은 조오지 요새로부터 남쪽으로 10KM 떨어진 온태리오주 쿠인스턴에 진을 치고 벌링턴 진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소식을 접한 라이알 영군은 치프와에서 북서쪽으로 11KM 떨어진 온태리오주 나이애가라 폭포 런디스 래인고지로 진군하였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1814년 7월 25일 온태리오주 캐나다 부총독 고오든 드러먼드 중장은 조오지 요새에 도착하여 나이애가라 전투 총지휘를 맡았다.

드러먼드는 영군이 나이애가라 동쪽에서 미군을 공격하여 미군이 서쪽으로 퇴진하게 길을 열어놓았으나 라이알의 영군이 북쪽에 있는 런디스 래인고지에 진을 치고 있는 줄 몰랐던 브라운은 북쪽으로 진군하여 영군을 조오지 요새로 몰아내는 역공격을 감행하기로 했다.

 

런디스 래인고지 전투(1814년 7월 25일)

미군이 런디스 래인으로 진격하는 것을 목격한 라이알은 조오지 요새로 후퇴하려고 했으나 증원군을 보내주는 드러먼드의 작전명령으로 런디스 래인고지를 고수하게 되어 저녁 6시에 증원군과 함께 고지에 집결하였다.

스캇은 영군의 포병대가 런디스 래인고지에 진을 친 것을 모르고 확 터진 전장을 통해 영군을 추격하다 영군의 포격을 받아 주춤하고 토마스 제섭 소령이 이끄는 미 연대를 영군의 좌측대열을 공격하게 하였다.

제섭은 숨겨진 숲길을 통해 영군에 발각되지 않고 캐나다민병과 원주민전사를 포함한 영군의 좌측대열을 기습 공격하였다. 놀란 영군은 반격을 가했으나 미군에게 쫓기게 되었고 부상당한 라이알 소장은 영 장교들과 포로가 되었다. 드러먼드는 영군의 좌측을 보강하기 위해 중앙대열을 후진으로 보내어 영 포병대는 미 보병대에 노출되었다.

어둠이 찾아올 때 용맹한 스캇 사단은 많은 희생자가 속출하였다. 브라운은 엘리저 리플리 준장 사단과 피터 포터 준장 사단을 스캇 사단과 교체하였다. 리플리와 포터의 엄호사격을 받으며 제임스 밀러 소령의 보병연대는 영 포병대의 대포를 포획하였다. 뒤늦게 영군이 역 공격을 했지만 미군에 의해 퇴치되었다.

목에 상처를 받은 드러먼드는 영군을 재정비하여 미군에게 뺏긴 포를 쟁취하려 했지만 미군의 역습을 받아 일단 후퇴를 하고 두 번째 공격을 시도 했으나 미군의 정돈된 수비력에 실패를 거듭했다.

집요한 드러먼드는 자정이 되기 전 영군을 총 집합하여 세 번째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캐나다민병과 원주민전사는 영 정규군과 호흡이 맞지 않아 어둠에 갈팡질팡하며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하고 닥치는 대로 육박전을 벌이다 포 획득을 포기하고 끝내 후퇴하고 말았다.

어둠 속에서 6시간 각축전에서 양군은 많은 희생자를 냈고, 스캇과 브라운도 중상을 입었다. 명장 스캇은 증상이 심해 후방으로 옮겨졌다. 물과 보급품이 떨어져 브라운은 후퇴를 명령했다. 리플리와 포터는 진격을 원했지만 브라운의 지시를 따라야 했다. 양군은 야간전투에서 서로 빼앗은 포를 갖고 후퇴를 했다.

26일 새벽에 1,200명의 미군을 통솔한 리플리는 드러먼드의 영군 2,200여명이 포티지 전투지역을 장악한 것을 보고받고 브라운의 미군과 함께 이이리 요새로 후퇴하였다. 후퇴하는 미군을 목격한 드러먼드는 쿠인스턴으로 집결하여 증원군을 대기하였다.

벌링턴으로 진격하려던 브라운의 작전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미군은 나이애가라 지역에서 영군과 대치상태로 전투를 마감했다.

2,500명의 미군은 174명의 전사자를 포함하여 855명의 희생자를 냈고, 3,500명의 영군은 84명의 전사자를 포함하여 867명의 희생자를 내어 1812년 전쟁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를 기록했고, 야간에 피비린내 나고 무참한 전투를 승패 없이 마감했다.

그러나 미군은 치프와 전투에 이어 런디스 래인 전투를 통해 막강한 영 정규군에 대항할 수 있는 전투력을 과시하게 되었다. 1937년 캐나다는 나이애가라 런디스 래인 지역에 기념탑을 세우고 국립역사지역으로 지정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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