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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지조(志操)-성삼문과 이순신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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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호

(문협회원, <계간수필>동인)

 

 이승만 정권 말엽,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지조를 흙같이 여기던 세태였나 보다. 그런 풍조에 분노한 ‘마지막 선비’ 지훈(芝薰)은 그의 명 논설 <지조론, 1960>에서 일침을 가했다.“지조란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려는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確執)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 지조는 선비의 것이요, 교양인의 것이다. 선비와 교양인과 지도자에게 지조가 없다면 그가 인격적으로 장사꾼과 창녀와 가릴 바가 무엇이겠는가? 식견은 기술자와 장사꾼에게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라고.

 

 세종의 탁고(託孤)를 입은 중신이 목숨 바쳐 충의를 떨친 게 성삼문의 모습이다. 지조는 양심이 명하는 바른 뜻을 지키는 굳은 의지다. 순도와 품격을 기준으로 지조의 등급을 매긴다면, 첫 번째는 성삼문일 것이다. 절개를 굽혀 판서, 정승을 지내고 적절히 공적도 이룬, 소위‘꿩 먹고 알도 먹는’처신의 전형은 정인지. 신숙주, 정창손, 권람, 최항 등에서 본다. 그들이 성삼문의 서슬퍼런 절의 앞에 선다면, 빛이 흐리고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임진. 정유 7년여의 왜란 때 내부의 적들은 이순신의 활약을 시기하는 데 열심이었다. 그들은 왜장이 획책한 수작(酬酌)에 놀아나면서도 순신을 음해했다. 내부의 적 중엔 선조임금도 있었다니, 한(韓)민족의 나라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 하겠다. 순신은 꿋꿋한 지조와 살신성인하는 인품으로 안팎의 난관을 극복하고, 20배, 30배나 많은 왜적과 싸움에서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연전연승을 거두고 나라를 구했다. 그는 현충사, 이순신대교, 군함 이름, 거리 이름, 지폐, 광화문 광장의 동상 등으로 기념되어 겨레의 존숭을 한몸에 받는다.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화적 성취는 한글 창제일 것이다. 성삼문은 한글의 음운체계를 개발하느라 신숙주와 함께 명나라와 요동 지역을 열세 번이나 다녀오는 등 공적이 컸다. 단종의 복위를 꾀한 성삼문 등의 쿠데타 모의(세조 2)는 김질과 그의 장인 정창손이 밀고했다. 이때 주모자 70여 인과 그들의 가족 친척 등 6백여 명이 주살되었다. 세조가 친국하며 삼문의 한쪽 팔을 자르고,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다리를 뚫었다.

 

 (세조):“공모자를 불면 목숨은 살려주마.”(삼문):“박팽년 이개 유응부 등과 우리 아버지뿐이오.” 세조가 재차 다그쳤다. (삼문) “그게 전부요. 우리 아버지의 가담도 숨기지 않고 말했거늘, 항차 다른 사람이겠소!?.”

 

 국문장에서 강희안을 본 삼문이 청을 했다. (삼문)“이보시오 나리(세조 임금)! 나리는 선대가 아끼던 명사들을 다 죽이면, 누구와 더불어 정사를 논하려 하시오? 강희안은 어질고 재주있는 사람이오. 그는 모의에 가담한 바 없으니, 놓아주오.”강희안은 곧 풀려났다. 자신은 죽음의 길을 가면서 아까운 벗의 구명을 위해 변명을 한 것이다.

 

 능지처참 직전에 읊은 삼문의 절명시(絶命詩)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케 하지만, 죽음의 두려움을 초월한 대장부의 기개와 자부심이 넘쳐난다.

 

擊鼓催人命/ 回頭日欲斜/ 黃泉無一店/ 今夜宿誰家 (울리는 북소리는 사람 목숨을 재촉하고/ 돌아보니 해는 지려고 하네/ 저승 길에는 주막 하나도 없다는데/ 오늘 밤은 뉘 집에 묵어 갈꼬)

 

 훗날 세조가, 그때 죽인 선비들을 회고한 자리에서 “금세(今世)에 난신(亂臣)이나, 만세의 충신이로다.”라고 했다. 세조가 평한대로, 사육신 등의 충의는 6백 년의 시공을 넘어 오늘에 전하는 메시지가 맵고도 뜨겁다. 그들의 서릿발 같은 기백과 지조가 없었다면‘충효(忠孝)’를 최고 가치의 덕목이요 이념으로 삼던 조선의 교육철학도 공염불이 되었을 것이고, 자칫 국민정신이 타락하여 곡학아세(曲學阿世)와 궁중 음모의 썩은 냄새만 진동할 뻔하지 않았을까. 사육신의 절의, 이순신의 끈질긴 충성심은 민족사에 부는 한 줄기 청량 풍이요, 우러러볼 교육지표라고 하겠다.

 

 근래 일부 교수가, 조선 초의 변절자 정인지 신숙주 정창손 등의 활동을 부각하면서, 일본에 나라를 팔아넘긴 매국노 박제순 이완용 송병준 이근택 조중응 이지용 권중현 민영기 고영희 등을 유능한 관료라고 치켜세우는 등 해괴한 주장을 한다. 그런 자들은 순정(純正)한 충신인 성삼문 박팽년 등과, 구국 활동에 목숨을 바친 이순신 이회영 이상룡 김구 신채호 안창호 노백린 김좌진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 등을 현실 부적응자로 치부(置簿)하며 비아냥거리는 부류다. 출신이 의심스러운 인간들이 토하는 치졸한 궤변으로서, 속이 뻔히 보이는 말장난이다.

 

 만약 우리 역사가 그런 자들의 희망대로 됐다면 조선도 한국도 벌써 없어졌을 것이고, 김 씨. 이 씨. 박 씨. 등 조상 전래의 성과 이름은 사라졌을 것이다. 우리말과 한글은 쓸 수도 없고, 정체성을 잃은 우리 겨레는 중국인이나 일본인에 녹아들어 그들의 눈치나 살피며 연명할 게 뻔하다. 한류(韓流)라는 문화 현상은 꿈도 꿀 수 없을 일이다.

 

 지조있는 이는 제 뜻이 꺾이면 죽을 자리를 스스로 찾아들고, 지조를 팽개치는 이가 위험한 상황을 맞닥뜨리면 천 리 밖으로 달아난다. 목숨이 귀한 건 같을진대, 두 부류가 위기 때 보여주는 믿음성과 지조와 관련해 나타내는 태도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 지조 있는 이와 지조 없는 이의 품격 차이도 그만큼일까?

 

 지조는 우리의 정체성, 그리고 겨레와 나라의 명맥을 지키는 실천적 정신이다. 지조 없는 자를 움직이는 건 선악을 구별하는 가치관도 양심의 명에 따르는 굳은 의지도 아니다. 개인적 안락을 셈하는 얄팍한 타산이 그의 사고를 지배한다. 이는 지식이 많고 적은 것과는 상관이 없고, 오직 말과 행동으로 드러난 것에 의해 평가가 이루어진다.

 

 간사한 자는 면종복배(面從腹背)하고, 일구이언(一口二言)하기를 식은 죽 먹듯 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그래서 부귀를 누릴는지는 알 수 없어도, 그들의 언행에는 방향(芳香)이 없다. 그러한 존재가 선비, 교양인 또는 지도자라는 우아한 너울을 쓰고 앞장선 사회는 불행하기 쉽다. 조심하고 경계할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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